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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머리에 미리 밝히는 것이 마땅한거 같아서... 이글은 댓글 못달게 해놓을 것이고..
그렇게 하면서까지 이렇게 지극히 개인적인 얘기를 하는 이유는 할머니 돌아가신 이후로 계속 맘에 응어리처럼 남아서 풀어놓지 않으면 병될 것 같기때문이다. 여기 대낮에 티비에서 하는 토크쇼에 나와서 눈물 콧물 짜가며 남친이 친구랑 눈이 맞아 나를 배신했는데 나는 아직도 남친을 사랑한다 뭐 그런 시시한 얘기들을 그많은 사람들과 시청자들 앞에 꺽걱거리며 털어놓는 미국여자들처럼은 아니더라도 나로선 만만하고 편한자리라 여기기 때문이다... ----------------- 작년 추석을 일주일정도 앞두고 86세이시던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지난 몇해 급격히 몸이 약해지시긴 했지만 특별히 병이 있으시지는 않았는데 봄에 막내사위, 여름에 큰사위(우리 아부지)를 갑자기 먼저 앞세우고 나셔서 아마 심중이 편치 못하셨을거라는 짐작은 된다. 몸이 약해지셨다 해도 당신 몸 돌보는 일은 철저하다 할 정도셨다. 매일 드시는 음식을 몸에 이롭다하는대로 종류대로 챙기시고, 노인네가 지저분하면 더 추레하다는 게 할머니 지론이신지라 아침 저녁 목욕 거르지 않으시고 목욕후엔 로션도 꼭 챙겨바르시고 머리도 기간 정해놓고 미용실 가셔서 단정히 커트하시고 하던 분이다. 지난번 서울에 갔을때 그러니까 2002년까지만 해도 엄마 안계시면 우리들 식사도 손수 해주시고, 동네 장보러 다니시고, 혼자 병원에도 다니시고, 집안일 다 돌보시고 그랬는데 2004년경부터 급격히 쇠약해지셔서 엄마가 늘 오래 외출하시자면 맘이 불안하다고 그러시곤 했다. 참 그리고 외할머니는 내가 6학년때 부터 한집에 사셨다. 그리고 그 전에도 늘 가까운 데 옆집, 아니면 같은동네에 늘 가까이 살았기때문에 마음엔 결혼하기 전까지 따로 살았다는 생각을 할 수가 없을 정도이다. 할머니는 전주가 고향이시다. 광산 김씨 무슨 파인지하는 종가집 막내딸이셨다. 할머니가 가끔 할머니의 어렸을 때 얘기를 해주시곤 했는데 그 당시 동네아이들 중에 귤 먹어본 아이들은 할머니댁 형제분들 뿐이었다고 한다. 집이 유복하고 제사가 워낙 많고 하니 늘 할아버지 방 벽장에는 그시절에 먹기 힘든 간식들이 많이 쟁여져 있었다고 한다. 그시절이야 여자들 공부시키던 시절도 아니고 시집가면 출가외인으로 여기던 때라 가난한 집에 어찌 시집을 가셔서 할머니 말씀이 '내가 이 김해김씨 집에 시집온 이후로 편히 살아보질 못했다'고 하시는 말씀을 어찌나 많이 하셨던지... 할머니는 음식 솜씨가 좋으셨다. 같은 나물을 무쳐도, 같은 김치를 담그셔도 늘 맛깔스럽고 깨끗했다. 엄마한테는 미안한 말이지만 음식맛은 할머니 못따라가신다..물론 엄마 음식도 우리친가에 가면 빛이 나지만 할머니 아래에선 감히 언감생신 구박꽤나 받으셨었다...ㅎㅎ...오히려 엄마 바로 아래 동생인 큰이모가 오히려 할머니 손맛을 이어 받은 것 같다... 할머니께서는 집에서 무슨 음식을 하던 하다 못해 간단히 국끓이거나 나물 무치는 데에도 꼭 어린 나를 부르셔서 간을 보게 하셨었다. 지금 여기서 살면서 가끔 그리운 밥상은 할머니가 명절 같은 때 차려내시던 아침상이다. 적당히 익은 맛있는 배추 김치외에 종류대로 3~4가지 되던 김치들, 오래 고은 육수에 맑게 끓인 무우장국에 갖은 정갈한 나물, 갓구운 김, 생선구이, 산적같은 손많이 가는 전이며 기타등등....하여간 덕분에 아직도 할머니가 맛보여주시던 그 맛들을 기억하고 그맛을 내려고 하다보니 이집에서 밥을 먹으면 뭔지 잘 모르겠는데 그냥 맛있다는 이상스런 칭찬을 종종 듣곤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집안 일을 시키거나 하지는 않으셔서 난 결혼하는 날까지 밥 한번 안끓여보고 살았고, 집에 어른 안 계실 때는 오히려 4살 위인 오빠가 뭔가 먹을 걸 만들어주곤 했었다. 하여간 나의 외할머니는 사람들이 흔히들 가지는 외할머니에 대한 이미지에 별반 어긋남이 없는 분이셨다. 그런데 왜 나는 그런 할머니에 대해 사랑하는 마음만을 가지질 못했나..사실은 그것이 이 긴 얘기를 시작한 이유이다. 할머니는 딸만 넷을 두셨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4녀 1남... 아들이 있었는데 13살 나던 여름에 물놀이하다 익사했다고 한다. 그러니 그맘에 아들에 대한 한이 얼만큼이셨을지 짐작이 간다. 외할아버지는 그 이후로 너무 술을 많이 드셔서 엄마가 결혼하던 해 여름에 돌아가셨고 그 해 겨울 크리스마스에 오빠가 태어났다. 할머니는 남편 잃은 슬픔에, 오래전 잃은 단 하나뿐인 아들을 잃은 슬픔까지 새로 태어난 외손자를 통해 위로 받으셨다..고 당신이 늘 그렇게 말씀 하셨다..그래서 평생에 딱 한번 그 시절에만 살이 조금 찌실 정도로 행복 하셨었노라하는 말씀을 여러번 들었다. 그래서 얼마나 오빠를 아끼고 사랑하셨는지도... 그리고 큰이모는 내가 2살되던 해에 내 이종사촌을 낳고는 그 시절에 드물지만 이혼을 하셨던지라 할머니는 안스러운 둘째딸의 아이를 막내 키우시듯 손수 우유먹이고 목욕시켜가며 거의 늦둥이 딸처럼 키우셨다. 이런 전후의 사정으로 수이 짐작되겠지만 세 손주들 중에 나는 좀 우선순위가 밀렸다. 게다가 우리 엄마는 한살 차이나던 남동생이 죽은 이후로 장남노릇까지 하지 않으면 안되는 맏딸이었으므로 당신 스스로 냉정하고 무뚝뚝하다라고 인정하는 분이시다. 아마 엄마라고 다정다감한 분이었다면 위로를 주셨을지도 모르는데..그렇지도 않았고 엄마조차도 할머니 손에 크는 조카에게 딱한 마음을 가지셨던지라 내가 무언가 받을 때는 꼭 사촌동생 것도 같이 준비해 주시곤 했다. 나로선 억울했었는데도 그런걸 내색하면 나쁜아이가 되는 거였으니까 그냥 나도 그렇게 사촌의 자리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구지 비교하지 않아도 명백히 밀리는 위치였던 나는 미리 진즉에 오빠와 이종동생의 뒷자리가 내자리라는 걸 감수하고 있었다. 하여간 그렇게 형제가 둘 밖에 없어도 막내는 막내였는데 난 그자리를 가질 수가 없었다. 게다가 좀더 크고는 사촌동생이 오빠와 더 죽이 더 잘맞아서 둘이 더 잘 놀았던것 같다. 나는 고무줄도 못해, 공기도 못해..하여간 하여간 그 시절에 애들이 보통하던 놀이들을 나는 다 잘 못했었다. 그러니 맨날 집안에서 책이나 보며 소일했겠지... 그래도 나를 표나게 물리거나 하진 않으셨는데..단지 내가 원하는 만큼 사랑을 주진 않으셨고... 내가 손내미는 만큼 사랑을 주지 않으신 걸 나는 나에 대한 거절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오빠나 사촌에 비하면 미모도 딸리지, 사분사분 애교스럽지도 못하지...그러니 내가 뭔가 재들보다 못한가보다 했던것도 같고 그렇다...뭐 하여간 어찌 어찌 다 자라서 대학가고 시집가고 그러다 보니 미국에 혼자 뚝 떨어져 살게 되었더란 말이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괜찮다. 그 모든 서운함은 나만 알고 있는 나만의 감정이었으므로... 그런데 할머니가 8년쯤 전에 처음 건강에 이상이 생기셔서 병원에 입원하시고 많이 아프셨던 적이 있다. 그때 병원에 입원하셔서 누워계시면서 엄마한테 그러시더란다. "내가 @@한테 어려서부터 정을 못주고, 잘 못해줘서 그애가 내가 이렇게 아파 입원해 있어도 소식 한마디가 없나보다."... 그 말씀 전해들은 나는 혼자서 무지하게 울었다. 왜냐면... 할머니가 알고 계셨던 거가 기가 막히게 속상해서, 그리고 나를 별반 사랑하지 않으셨다는 걸 기정 사실로 만들어 버리셔서, 나혼자만 그렇게 생각하고 아무한테도 말한 적 없는데 그러니까 할머니가 그 말씀 안하셨으면 남보기엔 그저 똑같은 할머니 손주일 수있었는데..이젠 사랑받지 못한 손주로 온 집안에 공표가 되어버렸으니까...차라리 아무 말씀이나 마셨으면 그냥 늘 그랬던 것 처럼, 이쁨 받고 자란 손녀딸처럼 대해 드릴 수 있었을텐데...솔직히 말하면 어려서 정을 주지 않으신 것보다 이렇게 말씀해버리신 게 더 서러웠다. 공부도 그닥 못하지 않았고 처음에 가까워지기 힘들어서 그렇지 친해지면 날 그리 싫어하는 사람도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내가 사소한 일에 사람들에게 거절 당하는 것 같은 이런 마음이랑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면 오히려 이상하다 여겨지는 이런마음들이, 이 오래묵은 상처들이 다 어디서 왔는데... 그래도 꽁꽁 숨기고 그저 약간 샤이하고 낯가리는 사람 정도로 비교적 잘 살아왔는데 할머니는 말 한마디로 내 상처를 다시 갈갈이 찢어 온세상에 내어 놓으신 거다. 이미 돌아가신 분한테 왜 그러셨느냐..사랑 안주신 걸로 부족해서, 그말씀을 그렇게 공개적으로 하신 건 도대체 무슨 마음이셨나 따져 묻고도 싶었는데...이제 줄다리기하다 반대편 사람이 줄 놓고 가버린 형국이라..빈줄 들고 혼자서 생각만 가슴에 쌓고 또 쌓고있다가 할머니가 줄을 놓으셨으니 나혼자 계속 줄붙들고 있기가 민망하다는 생각에 나도 이제 줄을 놓으려고 한다. 이렇게라도 줄을 놓는다고 내인생이, 내 성정이 갑자기 바뀌지도 않겠지만 돌아가신 분한테 계속해서 원망의 마음을 갖고 싶지도 않고 마음의짐이라도 덜고 싶어 이렇게 주절 주절 한바탕 떠들어 보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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